[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최근 글로벌 기술경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는 분야가 디지털 플랫폼 분야의 패권경쟁이다. 디지털 플랫폼이란 ‘온라인에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거래를 중개하는 장(場)’ 이다.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존 온라인 서비스가 디지털 플랫폼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미국의 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의 패권을 장악해 왔다.
마이크로소프트(M), 구글(G), 애플(A), 페이스북(F), 트위터(T), 아마존(A) 등이 대표적 사례인데, 최근에는 넷플릭스(N)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 흔히 TGiF, GAFA, FANG, MAGA 등과 같은 약자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이른바 ‘차이나 플랫폼’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바이두(B), 알리바바(A), 텐센트(T), 화웨이(H) 등과 같은 중국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여 BAT 또는 BATH로 지칭되기도 한다. 틱톡으로 유명한 바이트댄스(B)를 여기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들 중국 플랫폼 기업은 대부분 미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해 탄생했다. 후발주자로서 기술력이 뒤처진 상황에서 선진 모델을 거대한 자국 시장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이제는 단순한 ‘모방의 단계’에만 그치지 않고 ‘혁신의 단계’를 거쳐 ‘역전의 단계’로 나아가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일구어내고 있다.
중견국의 플랫폼 전략의 “응용 플랫폼 전략”
미국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디지털 플랫폼 분야에서는 글로벌 차원에서 작동하는 지배 플랫폼 위에서 ‘응용(application) 플랫폼’을 추구하는 동시에, 자국 플랫폼의 ‘개방적 호환성’을 유지하는 전략이 유용하다.
여태까지 한국은 일부 분야에서 나름의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였으며, 이는 해외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쉽게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는 보호막으로서 기능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부 컴퓨팅 및 인터넷 플랫폼에서는 일찌감치 미국 표준을 수용하고 그 위에 민족주의 정서 등을 활용한 한국형 응용 프로 그램(아래아한글 워드프로세서 등)을 세우는 전략이 어느 정도는 통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볼 때, 인공지능·클라우드·데이터 플랫폼 분야는, 미국 기업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지만, 동시에 이 분야의 특성상 한국이 독자적 플랫폼 또는 생태계를 구축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견국의 플랫폼 전략의 “편승 플랫폼 전략”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특징은 미중 양국이 각기 독자적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분야에서는 미국이 개방형 모델을 추구한다면, 중국은 커뮤니티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인 OTT(Over The Top) 분야를 보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미국 모델이 자신이 확보한 콘텐츠를 잘 관리하고 가입비를 받는 방식이라면 텐센트, 아이치이, 유쿠 등과 같은 중국 모델은 콘텐츠를 넘어 커뮤니티를 제시한다. 콘텐츠 면에서는 중국의 모델이 미국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커뮤니티 면에서는 더 강점이 있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중국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상황이다.
한국은 글로벌 범용 SNS는 미국 서비스(페이스북 등)를 따르면서도, 메신저 서비스 등 일부는 독자적 플랫폼(카카오톡 등)이 유지되고 있다. 하위분야별로 분담된 모델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의 범용 SNS가 침투하지 못하는 틈새를 한국 서비스가 차지한 양상이다.
중견국의 플랫폼 전략의 “제휴 플랫폼 전략”
이커머스는 온라인 플랫폼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의 인프라도 중요한 변수로 작동하는 분야이다. 이 분야는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아직까지는 미중이 본격적으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 국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미중 갈등의 조짐이 내비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모바일 결제 시스템과 같은 핀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한 중국 기업들의 도전이 눈에 띈다. 디지털 무역시스템과 그것을 백업하는 디지털 금융시스템이 연동되면서 미중 두 개 권역이 등장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지의 재화와 인력, 오프라인 유통망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이커머스의 특성상 해외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진출하려면 한국 기업과 제휴해야 하는 실정이다. 최근 아마존이 국내시장 점유율 3위인 11번가와 제휴하거나 오프라인의 이마트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 합병하려는 시도 등은 미국 기업들이 한국 사업자와 제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해외 확장성이 낮다는 사실은 한계로 지적된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는 독특한 생태계가 있고, 결국 해외 플랫폼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이커머스 생태계가 대외적으로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느냐가 의문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국가전략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자국 플랫폼(national platform)’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그 중요성을 더욱 절감할 수 있다. 유럽은 자국 플랫폼 시장을 미국의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럼에도 디지털 플랫폼 분야에서 유럽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 것은, 거대한 시장 규모를 무기로 삼아 해외 사업자의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규제 집행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유럽의 ‘자국 플랫폼’이 없어서 오히려 역으로 해외 플랫폼에 대한 규제의 칼을 꺼내 들기 쉬웠다는 지적마저도 나온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국내시장의 구도만을 염두에 둔 ‘플랫폼 규제’냐, ‘플랫폼 육성’이냐의 이분법적 논란을 넘어서는 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제조업 시대에 기반을 두는 ‘발전국가의 관성’이나 ‘규제국가의 멍에’를 넘어서 플랫폼 경쟁의 시대에 걸맞은 정책의 개발과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행보의 포괄적 방향은 규제정책과 육성정책의 균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 보호와 시장경쟁 활성화 간의 조화, 국내외 기업에 대한 플랫폼 규제의 비대칭성 해소, 글로벌 규제 조화 등이 플랫폼 규제정책이 고려할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쟁의 트렌드를 염두에 두고 국내 플랫폼 비즈니스를 육성하는 연장선에서 적절한 규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