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기술경쟁 또는 디지털 플랫폼 경쟁은 최근 부쩍 국가안보의 렌즈를 통해서 해석되고 있다. 5G는 통신인프라와 산업 및 서비스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놓고 양국이 벌인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 분야이다.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5G 기술의 선두주자인데, 2017년 기준으로 화웨이의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8%로 세계 1위를 차지 했다.
이러한 화웨이의 기술적 공세에 대해 미국은 사이버 안보 또는 데이터 안보 문제를 빌미로 제재를 가했다. 오랜 역사를 갖는 미국과 화웨이의 갈등은 2018년에 재점화되어 그해 12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체포로 절정에 달했다. 2019~2020년에는 화웨이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제재가 이어졌다.
화웨이 사태의 특징은 사이버 안보 분야의 동맹외교와 밀접히 연계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전선에 ‘파이브 아이즈’로 알려진 미국의 동맹국들이 동참했다가 분열되고 다시 결집하는 행보를 반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추진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다차원적인 국제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일대일로 구상의 대상인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대외교 추진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들을 대상으로 5G 네트워크 장비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였다. 화웨이는 사업 분야를 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으로 다변화했으며, 중국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5G 경쟁의 충격을 완화하는 구조적 대응책도 모색하고 있다.
우주 분야의 미중 경쟁도 큰 쟁점이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도전적 행보가 이어졌는데, 중국 최초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2003), ASAT실험 성공(2007), 우주-사이버-전자 통합 ‘전략지원군’ 창설(2016), 양자통신위성 발사(2016), 우주정거장 텐궁2호(2016), 창어4호 달뒷면 탐사(2019),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마무리(2020). 텐원1호 화성 착륙(2021), 중국 로켓 창정5B호 추락(2021) 등이 그 사례들이다.
우주굴기로 알려진 중국의 행보에 대응하여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우주군 창설(2019)을 포함한 우주정책을 가속했다. 특히 2025년까지 인류 최초의 달기지 건설(5년 이내에 유인화)을 목표로 한 중국과 경쟁하며, 미국은 유인 달탐사와 달 연구기지 건설을 포함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2024년까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화성우주헬기(인저뉴어티) 비행에서도 나타났듯이 최근에는 화성 탐사 경쟁도 벌이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첨단 군사기술, 이른바 밀리테크(MiliTech) 분야의 미중 경쟁에도 주목해야 한다. 민간 AI기술경쟁과 더불어 AI·로봇기술을 적용한 자율무기체계(AWS)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 11월 이후 미국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서 ‘3차 상쇄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도 2017년 10월 제19차 당대회 이후 군민융합 차원에서 현대화된 육군, 해군, 공군, 로켓군, 전략군 등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 무기체계뿐만 아니라 사이버-물리 시스템(CPS)의 구축이나 제조-서비스 융합 등도 미중 경쟁의 중요한 항목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민군 겸용(dual-use) 기술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양국의 군사혁신 모델 경쟁도 진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군사안보 분야의 첨단기술은 다자 또는 양자 차원의 수출통제 대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범위가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이다. 미중 기술 갈등의 맥락에서 미국의 제재는 중국의 민간기업에 대한 제재에까지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2021년 6월 미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핵, 항공, 석유, 반도체, 감시기술 분야 59개 기업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첨단분야 민군 겸용 기술의 수입규제와 연계된 ‘정치화’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데이터 유출과 감시를 이유로 중국의 민간기업인 DJI의 드론을 ‘잠재적 위협’이라고 경고하며 군사시설 주변에서 사용을 금지했고, 미군 기지에 하이크비전, 다후아 등 중국 기업이 납품한 CCTV의 사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래 권력이 결린 미중 경쟁 속에서 2018년부터 2019~2020년을 달구었던 화웨이 사태는 미중 패권경쟁에서 첨단기술과 사이버 안보 문제가 지닌 국제정치학적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었다. 게다가 한국에도 불똥이 튀면서 5G통신장비 도입 문제가 단순한 기술·경제적 사안이 아니라 외교·안보적 선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래 국력을 좌우할 첨단기술 분야의 미중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사이버 동맹외교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도 이에 맞서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의 전략적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화웨이 사태와 같은 도전이 다시 한번 제기된다면 한국은 어떠한 전략을 모색해야 할까? 이 글에서 살펴본 3개 범주, 10대 이슈들은 모두 이러한 종류의 고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좀 더 면밀한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