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baandek.org/posts/celebrity-montessori-students)
내게 있어 가르침의 위기는 알파고의 충격에서 왔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나왔기에 내 역할은 하찮게 되었고 어쩌면 끝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특히 유튜브는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나 내용을 검색하여 듣고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앞으로 무얼 가르쳐야 하는가? 그때부터 나는 거의 2년여를 방황했다.
내 고민과 방황의 결과물은 학생들에게 핵심역량을 기르는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대학원생이자 중학교 기술과 교사인 조용 씨로 하여금 박사논문을 일반적인 잡다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핵심' 프로젝트를 주제로 쓰자고 하고, 그것을 구체화했고, 그 결과 박사논문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이어서 나의 대학 학부 교육과정 수업과 조용 박사의 교육대학원 수업에 적용하여 그 결과물 일부를 포함한 '핵심역량을 함양하는 핵심 프로젝트의 이론과 실제'(교육과학사, 2021)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핵심역량을 길러주는 핵심 프로젝트의 이론과 실제
홍후조 , 조용 지음 | 교육과학사 | 2021년 08월 30일 출간(사진=교보문고)
그 책에는 핵심 프로젝트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원리와 절차를 상세히 안내하였다.
가령 내가 한 학기 동안 학부에서 '교육과정'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은 내가 전한 많은 것들 중 시험에 나올만한 것을 공부하고 시험치고 돌아서서는 잊어버린다. 학생들 중에는 수업 중 내가 전한 내용의 지극히 일부를, 아니면 단편적인 것, 수업 중 지나가는 소리로 한 전혀 엉뚱한 것을 기억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 시간에 배운 이론, 실제, 가치, 목표, 비전, 내용, 방법, 성과 평가, 개발 절차, 개발 모형, 개인적 집단적 고민 등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실제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핵심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내 학부 '교육과정' 수업에서는 이를 '국가 수준 교육과정기준 총론'을 만드는 것으로 정했다. 그때부터 몇 학기 째 이를 수행해오고 있다. 이 수업에서 고려대 학부 학생들은 정말 진하게 고생한다.
나는 교육과정 수업 시간의 핵심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연세대, 고려대, 인하대, 국가공무원연수원 등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연수로 전파하기도 하였다.
감히 말하건대 현재 교육부가 펴내는 개정 교육과정 총론 문서보다 고려대학교 학부생들이 교육과정 시간에 핵심 프로젝트로 수행한 것이 더 나은 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아마 교육부가 개정 연구팀을 특정하지 않고, 건축설계 공모전처럼 널리 공모한다면 내가 지도한 학생들의 교육과정 총론 작품은 주목을 받을 정도가 될 것이다.
다시, 지식폭증시대, 지식검색시대에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보람을 느낄까? 그들은 어디서 가르침의 어려움과 고단함의 위로와 보상을 받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교사는 학생들보다 더 많이, 더 체계적으로 지식을 배워서 이를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교육 혹은 가르침으로 여겨왔다.
나도 상당기간 동안 열변을 토하듯, 세찬 폭포수처럼 한 시간을 내리 학생들 머리를 향하여 내 가진 지식을 쏟아 부었고, 수업이 끝나 파김치가 되어 내 책상에 돌아와서 참 열심히, 참 잘 가르쳤다고 자위를 해왔다.
그러나 정보화, AI로봇 등으로 인해 그런 것은 어디엔가 더 잘 정리되어 검색하면 다 나온다고 하면서 지식의 체계적 전달은 더 이상 교사의 일이 아니고, 심지어 때로는 잘못된 수행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교사들의 설 자리는 무척 좁아졌다.
최근 미국의 빅 테크기업의 CEO들은 우연인지 모두 유치원에서 몬테소리교육법을 경험했다고 한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아마존의 제프 베조프, 위키피디아를 만든 지미 웨일스, 야후의 머리사 메이어 등이 '몬테소리 마파아'이고, '몬테소리 키즈kids'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부가 유치원에 적용할 누리과정 보조금 지급을 미끼로 모든 유치원에 누리과정을 획일적?강제적으로 적용한 결과 사립의 몬테소리유치원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관료적 통제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 것이다.
몬테소리교육법의 본질은 교사가 학생의 호기심, 관심, 동기를 자극하되, 학생이 관심을 갖고 몰입하는 학습대상을 추구하는 길을 존중하여 같이 따라가면서 그 범위가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곁길로 빠지지 않게 길잡이 노릇을 하며, 나아가 학생의 학습 성과의 질이 높아지도록 돕는데 있다고 한다.
CEO들은 몬테소리유치원 때처럼 재미있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니 사업이 되더라는 것이다. 교사는 가르칠 학습내용을 먼저 배워서 학습자에게 더 많이 더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라(물론 이것도 일부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서,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사는 지금 여기 현장에서 학습자와 학습대상 사이의 중매활동mediation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의 역할을 guide, advisor, facilitator, helper 등으로 재정의된다.
필자는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지도할 때 '가르침의 진수'를 경험한다. 논문은 개별지도의 '끝판왕'이다. 논문은 대학원생 연구자와 지도교수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 품질이 다듬어진다. 연구자가 선택한, 관심 있는 주제를 논문으로 쓰거나 혹은 지도교수가 논문주제들을 예시하고 연구자가 그 중에서 선택하여 논문을 써갈 때, 지도교수는 가르침의 정수(精髓, essence)를 맛보는 것이다.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둘 다 그 주제에 대한 탐구자가 된다. 배움을 시작하는 유치원생과 학업의 최고봉인 대학원생 사이에 뭔가 공통점이 있다. 학생의 자기 주도적 탐구활동이고 학업수행이다.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가르침의 핵심은 학습자와 학습대상 사이의 중재활동에 있다. 다만 개별 학생의 논문지도가 아닌 다인수 학급의 수업에서 이를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는 여전히 고민된다.
필자: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