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떤 지식이 가장 가치있는가?
21세기, 인간지능을 능가하여 Deep Learning하는 AI를 장착한 로봇시대,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공교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이 질문은 1860년 산업혁명과 신분제 붕괴 이후, 모든 사람이 자유민주사회의 일원이 된 보다 평등한 영국사회에서 ‘어떤 지식이 가장 가치있는 지식인가?’를 물은 Herbert Spencer의 질문을 잇는 것이다.
사회진화론자인 스펜서는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온전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논증・실증된 과학적 지식에 바탕하여 다음 5가지가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고 하였다.
첫째, 자기보존에 직결되는 건강에 관한 지식이다.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데 직접적으로 쓰이는 과학적 지식으로, 체육, 보건과 건강, 영양 등이다.
둘째, 직업생활을 위한 과학적 지식, 즉, 전공 직업기술 지식이다. 이 지식은 생계유지와 관련되며 직업인이 되는데 필요한 실제적 지식을 말한다. 이 지식은 사람들의 경제력을 향상시켜 간접적으로 자기보존에 도움이 된다.
셋째,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육아를 하는데 필요한 과학적 지식이다. 가정경제를 영위하고,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식사 등 가정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말한다.
넷째, 공공생활에 민주시민(공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사회정치적 지식으로, 국제관계학, 정치학 등을 말하며, 이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학생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지점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으며, 시민다운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
다섯째, 삶의 여유와 여가를 즐기는데 필요한 문화 예술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이다. 이는 일상적인 삶의 필요를 채우는 과학적 지식을 말한다. 이 5가지 지식은 정확히 과거 소수 귀족을 위한 지식의 우선순위를 뒤집은 것이었다. 이런 권고는 지난 150년 이상 근현대 학교교육에서 중심축이 되어 왔다.
학교는 ‘배우는 법, 살아가는 법, 일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학교 공부는 ‘건강한 생활’(체육, 보건, 건강)과 ‘즐거운 생활’(미술, 음악 등 예술)을 바탕으로 하며, 아동이 사회적 존재로서 성장하면서 지켜야 할 공공의 규칙을 배우는 ‘바른 생활’을 통하여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를 확립하도록 한다.
그리고 ‘슬기로운 생활’로 넓혀나간다. 슬기는 인간과 사회생활에 쓰이는 슬기(국제관계 외교, 정치, 경제, 사회문화 도덕윤리, 역사, 지리 등), 그리고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슬기(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환경과학, 기술공학과 AI 등)을 말한다.
2. 인간 일생의 3단계 발달과정
인간의 발달심리학을 대표하는 J. Piaget나 J. Bruner 등에 따르면 사람의 일생은 대체로 3단계의 발달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일찍이 영국의 과학철학자 A. N. Whitehead는 그것을 Romance 단계, Precision 단계, Generalization 단계라고 명하였다. 이를 풀어보면 첫째, 영유아가 주변 환경을 직접적으로 접촉하면서 오감을 발달시키는 단계이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어 낭만, 상상,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부의 부모는 자기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스마트폰, 패드 등을 사용하곤 한다. 스마트폰, 패드 등으로 인하여, 아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TMI)에 노출되어 ‘고장’ 난다. ‘고장’난 영유아는 앞선 세대가 겪은 환경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영유아는 듣고 말하는 능력을 중심으로 학습하게 되며, 배움의 출발점일 수 있는 읽고 쓰는 방법을 학습하기 어려워하거나 익히지 못한다. 이는 ‘새로운 문맹세대’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출생률 급감에 직면한 우리 사회가 이미 세상에 나온 아이마저 장애아 및 특수아로 만든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간접경험, 가상현실 경험을 대폭 줄여 주어야 한다. 산에 오르고, 하늘과 별을 쳐다보며, 망망대해를 가슴에 안아 보아야 한다. 낭만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낭만의 세대’를 만들어 주자.
둘째, 청소년 시기에 수학, 과학, 기술공학, 논리학 등을 통해 검증, 실증, 논증된 공부를 하여 정확성을 발달시키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1+1=2와 F=ma를 배워 수학과 과학기술 문제를 해결하고, 문법에 맞게 글을 쓰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글쓰는 법을 배우는 시기이다. 포스터모던 시기의 강조된 상대주의로 인하여 정답이나 최선의 답을 내는 공부를 버리고, GPT처럼 그럴싸한 답(hallucination)을 모두 정답으로 처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술과 인문사회학적 사고를 다른 모든 분야로 확장한 부작용이다. 오늘날 학교는 ‘자유+민주+이성’을 키울 자리에 ‘민주+감수성’을 채워 넣어 이성 및 합리적 사고 능력이 저하되고 있으며, 이것이 심해지면 비행기나 인공위성을 띄울 수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은 정확성을 발달시키는데 부족하였다. 이 원인 중 하나는 학교 공부의 시간 비중이다.
우리나라의 시간 비중은 문과형 과목(언어, 사회 등) : 이과형 과목(수학, 과학, 기술공학) : 예체능 과목이 5 : 3 : 2 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이과형 과목의 수업시간 비중이 전체 비중의 50%가 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래야 문명대변혁에 적응하고 그것을 주도할 인재를 키울 여지가 생긴다.
학교 교육과정이 아직도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한 가지의 원인을 추측하자면, 우리나라 초등교사는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문과형 공부를 중점적으로 하여, 수학•과학•기술공학과 관련된 지식의 습득이 부족한 편이다.
이것은 결국 어린 학생들을 대할 때, 자신이 아는 것 만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학생은 문과식 사고에 길들여지게 된다.
문과형 공부는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들이 객관적 사실보다 그에 따른 해석•의견•판단 주장을 존중한다는 것에 비롯되며, 이것은 국제 비교를 통하여 드러난다.
이러한 양상은 결국 차이와 차별의 경계점을 모호하게 만들게 되고, 사실보다는 흥미로운 가짜가 주류가 되는 시대, 감정에 호소하는 시대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와 결별하고, 틀림없고 꼼꼼한 ‘정확성 세대’를 형성해야 한다.
셋째는 원만한 성인이 보이는 넓은 교양과 종합적인 판단의 성숙을 보이는 단계이다. 날카로운 청년기를 넘어 원만한 성인기의 원숙함에 이르렀다.
손주의 실수나 차이에 관대한, 마음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 성인들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공부를 그만두기 일쑤다.
선진국 중 성인 문해력이 꼴찌에 속한다. 2022년 성인의 경우 종합독서율은 43.0%, 종합독서량은 3.9권으로 ’21년에 비해 각각 4.5%포인트, 0.6권 줄어들었다. 대신 SNS를 통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섭취하여 확증편향을 만들어 살아간다.
가짜임에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싶은 경향(truthiness)을 띤다.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좀처럼 고치지 않으며, 지연, 혈연, 학연에서 묶인다. 지역별 투표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조용한 다수는 묻혀가고 ‘시끄러운 깡통’들이 요란한 세태다. 거대화된 양당과 이념 편향성이 짙은 언론은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재생산하고, 대중은 이야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혹은 가려진 진실을 포착하는 것이 아닌 나타난 그대로를 믿게 된다.
그로 인하여 우리나라 정치의 상황은 분열의 정치와 극단의 정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이성과 교양의 중요성과 성숙과 완숙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야 하며, 넉넉한 ‘지혜의 세대’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필자:홍후조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정학 전공
<참고문헌>
안종배(2024), 인류혁명과 문명대변혁, 박영사.
용환승(2024), 포스트 휴먼과 로보데우스, 자유아카데미.
홍후조(2108), 알기 쉬운 교육과정, 학지사.
홍후조(2024.5.22.), “지능혁명시대,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한선브리프 304호.
Spencer, H.(1860), Education: Intellectual, Moral, and Physical, CW Bard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