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해외서적 “존 로스켈리 Last Days” 리뷰 ㉔

  • Editor. 이은광 기자
  • 입력 2024.03.28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보체 ( Taboch 또는 Tawetse 라고도 함 )는 네팔히말라야 의 쿰부지역 에 있는 산이다. Taboche는 긴 능선으로 Cholatse 와 연결되어 있다. 왼쪽의 타보체(Taboche)와 중앙의 촐라체(Cholatse) /자료및 사진=위키피디아
타보체 ( Taboch 또는 Tawetse 라고도 함 )는 네팔히말라야 의 쿰부지역 에 있는 산이다. Taboche는 긴 능선으로 Cholatse 와 연결되어 있다. 왼쪽의 타보체(Taboche)와 중앙의 촐라체(Cholatse) /자료및 사진=위키피디아

“타보체(6,564m) 북동벽에 도전하는 행위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일이다. 3분의 2는 미쳐 있어야 하고, 3분의 1은 술에 취해 있거나 루트에 대해 전혀 무관심해야 한다.”

1984년 쏟아지는 대형 낙석 사태로 황급히 철수했던 존 로스켈리는, 1989년 1월 제프 로우와 함께 이 불가능의 벽에 다시 도전했다.

제프는 요세미티에서 많은 초등에 성공했지만, 빙벽과 알파인 거벽등반, 동계 단독등반,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의 암릉에서 그 명성이 더욱 알려졌다. 존과는 등반경력과 체격, 나이가 비슷했지만 인생은 많이 달랐다.

그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자생적인 히피족으로 자유 분방하게 생활했고, 존은 광산이나 농촌의 보수적인 환경에서 백인 노동자 층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89년 타보체 등반을 준비할 때 그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에 쉽사리 흔들릴 정도로 충동적이질 않았고, 각자 결혼을 해서 가족을 구성했고 신용카드도 생겼다.

무엇보다 직장에 취직을 한다는 커다란 변화를 수용했다. 파미르에서 만난 지 15년 만에, 그들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히말라야 거벽에서의 알파인 등반은 많은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치명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준비하지만 드물게 시도되는 방식이다. 그들은 초경량 알파인 등반에 경험이 다양했다. 최소의 장비와 인원으로 극소의 성공 확률에 도전하는 것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등반보다는, 등반 과정과 방식만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1월 25일 페리체에 도착하여 루트 정찰을 했다. 짐 무게가 최대의 적이 될 것 같다. 12일을 계획했지만 8일로 수정하고 식량도 캔디바, 동결건조한 과일, 수프 등 고칼로리 음식으로 포장하여 짐 무게를 줄였다. 각자 135kg의 짐을 4,880미터 지점의 전진캠프까지 올렸다. 타보체 북동벽을 처음으로 붙는다는 것은 확실히 감동적이다.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벽의 하단부는 크랙이 불완전하여 고전할 것 같지만, 상부로 갈수록 경사도는 급해도 크랙이 잘 형성되어 있어 다행이다. 제프가 선등을 했다. 존은 최근 몇 년간 활발한 등반을 하지 못해 감각이 무디어져 있었다.

처음 20여 미터는 순조롭지 않았지만, 곧 인공등반으로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존은 주마로 등반을 준비하며 저 멀리 평화로운 페리체 마을을 내려다본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거지? 나에겐 아이와 농장이 있고, 이짓을 하기에는 나이(당시 42세)를 많이 먹은 것 같은데, 미친 짓이야.’ 속으로는 ‘아저씨 나 좀 살려 줘!’라고 외치고 싶지만 제프에게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제프는 능숙한 동작으로 좁은 크랙과 얼음으로 된 병목 구간을 한 마리의 나비같이 가볍게 돌파했다. 그가 혼합등반의 최고라는 명성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벽등반을 할 때는 전체 구간을 생각하지 말고, 바로 앞에 있는 구간이 마지막 마디라고 여기고 등반하라”는 제프의 외침에, 존은 다시 벽에 집중했다.

짐 올리는 방법은 경험과 기술보다 지형에 의해 결정된다. 요세미티식 홀링으로는 이 벽에서 어려울 거란 판단에 따라, 각자 배낭에 짐을 나누었다. 하지만 오버행과 얼음ㆍ바위의 혼합등반, 수직의 벽에서 주마링하기에는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3종 경기의 철인이 된 것 같다. 오후 4시 첫 번째 비박에 들어갔다. 제프의 원타치 비박용 텐트는 온전하고 안락한 숙소를 제공했지만, 존의 해먹은 오래 되어 말썽을 피웠고 그대로 허공에 내던져버렸다. 그때부터 그는 자연이 제공해 주는 숙소에서 비박을 해야 했다. 러시아워의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은 개가 생각이 났다. 다음날 아침 존에게 뇌수종 증세가 나타나 회복을 위해 페리체로 하산을 결정했다.

1990년 멜룽체 캠프3 에서  존 로스켈리.(사진=존 로스켈리)
1990년 멜룽체 캠프3 에서  존 로스켈리.(사진=존 로스켈리)

제프는 그동안 고소순응이 되었지만 존이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까지 너무 빨리 온 게 원인인 것 같다. 제프의 경험과 연륜이 넓은 이해와 아량을 보여 흔쾌히 동의한다. 몇 일 후 첫 번째 비박지로 향했다.

다시 뇌수종 증상이 나타나면 타보체와 함께 히말라야에서의 등반을 포기할 거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제프에게는 다른 문제였다. 존이 등반을 포기하면 그는 단독으로라도 도전할 것이다. 그의 눈빛과 준비하는 태도를 보면 단독등반도 계획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의 단독등반을 어떻게 받아 들이지? 우리 중의 하나가 낙석에 부상을 입는다면? 그래서 상대방과 연결된 로프를 끊어야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갑잡스런 폭풍우로 갇히게 되면? 과연 이 벽에서 탈출로를 확보할 수 있을까?’ 등의 상념으로 무거워진 발걸음이, 이미 전진캠프에 도달했다.

다음날 두 사람은 활기찬 등반을 시작했다. 양파껍질보다 좁은 크랙을 암벽화를 신고 넘어 선다. 제프가 대부분의 루트를 선등하고 짐을 올렸다. 고단했던 하루가 지나고 벽에 매달려 다시 얼음을 녹이는 긴 작업에 들어갔다. 타보체 벽의 크기는, 꽁꽁 얼어 붙은 한밤에도 줄기차게 얼음과 바위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조용한 법이 없다. 잠을 청해 보지만 오로지 믿는 피신처는 벽일 뿐이다.

다음날, 중앙 걸리 밑에서 암빙이 혼합된 넓게 벌어진 크랙에 봉착했다. 알파인 등반의 극치에 달하는 역겨울 정도의 급경사 지대다. 제프는 기차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기차길을 거꾸로 오르듯이, 필사적으로 그의 아이젠과 아이스 바일에 집착한다.

5,600 미터의 고도에서 3일째 밤을 맞는다. 갈증과 탈진으로 인한 고통으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음날은 존이 선등하기로 했다. 오른쪽 아래는 아이젠으로 얼음을 찍고, 왼쪽 아래는 바위 턱을 밟고, 왼손으로는 아이스 바일로 얼음 위를 걸고, 오른손으로는 크랙을 더듬는다.

다음 동작은, 또 다음 동작은? 복잡한 계산이 더욱 고통스럽다. 이 중앙 걸리는 어디에서 끝이 나는 것이지? 제프와 선등을 교대하며 걸리가 끝나는 오버행 밑에서 차 한 잔만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에 그들은 갑작스런 낙석사태에 정신을 못차린다. 엔진달린 유성이 쏟아지는 듯한 거대한 낙석이었다. 잔뜩 위축이 되었지만 오히려 생존에의 의지를 더욱 다진다. 계속된 긴장으로 그들은 점심 무렵 등반을 중지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이상한 조짐이 나타난다. 폭풍우가 다가오는 징후였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야간등반을 감행한다. 이 급경사 지대에서 폭풍우에 갇히게 된다면,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 그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만이 기다릴 것이다.

저자 존 로스켈리ㅣ출판년도 1991년ㅣ쪽수 211쪽ㅣ출판사 스택폴 북스 (사진=Sastodeal.com) 
저자 존 로스켈리ㅣ출판년도 1991년ㅣ쪽수 211쪽ㅣ출판사 스택폴 북스 (사진=Sastodeal.com) 

날이 새면서 구름이 몰려왔다. 그들은 간신히 동굴을 발견하고 피신했지만 제프가 고산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고소에서의 산소결핍은 뇌수종이나 폐수종으로 직결된다. 그의 병력으로 보아 뇌수종이 잠재적인 위협이다. 등반시작 후 처음으로 가까이 붙어서 잠을 자지만 가장 긴 밤이 흐르고 있다. 제프가 회복되지 않으면 하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밤새 폭풍우로 시달렸다. 제프의 의지는 어느때보다 강했다. 그는 저산소와 배고픔으로 느리게 진행했지만, 끊임없이 고도를 높였다. 기력을 회복한 제프 덕분에 등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폭풍우도 카라코람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정상을 60여 미터 남기고 8일째 마지막 비박에 들어간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고 다치지도 않았다.

2월 13일, 나뭇잎에 이슬이 맺히듯 새로운 새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제프와 존을 깨우기 위한 훈풍이 속삭인다. 히말라야의 영원한 평화가 그들 주위를 감싸고 있다. 낙석과 낙빙의 바다를 건너온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 말이 없다.

존은 1984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떠나기 앞서 스폰서인 듀퐁사로부터, 자사의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 산소통을 이용해 달라고 요청 받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고도에 대한 도전인데, 산소통을 이용하여 고도를 낮춘다면 무엇 때문에 히말라야에 가느냐”며 거절했었다. 정상에 오르는 행위는 어떻게 그 정상에 오르느냐 하는 선택된 방법의 결과이지, 정상 등정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명성과 부는 강력한 보상 수단이지만, 인생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수여하는 보상만이 영원할 거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타보체는 존이 경험한 등반 중 최고의 등반이었다. 기술적으로 고난도의 어려운 루트를 돌파해서가 아니었다. 더욱이 동계에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해서도 아니다. 제프와 존은 친구로 등반을 시작했고 친구로 등반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 어떤 평가도 통계기록도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사실은 없을 것이다. 성공의 확률을 채울 수 있는 기회는, 팀이 하나가 될 때다. 제프와 존은 인생의 적절한 시기에 만나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었고, 타보체를 오를 수 있었다.

필자

호경필 (前 한국산서회 부회장)

저작권자 © 디지털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