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최근 미중 두 강대국의 기술 경쟁이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4차산업혁명 분야의 첨단기술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미중이 벌이는 첨단 부문의 기술 경쟁은 민간 부문에서 기업들이 벌이는 경쟁의 차원을 넘어선다. 양국의 정부, 경우에 따라서는 양국의 국민까지도 참여하는 다차원적인 국력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좁은 의미의 기술과 산업을 넘어서 무역과 금융, 정책과 제도, 외교와 규범 등을 포괄하는 복합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 미중 양국의 기술 경쟁이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본 디지털 패권경쟁을 방불케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미·중 기술경쟁과 안보화
미중 기술경쟁의 외연이 넓어지고 내용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기술변수와 안보문제의만남이다. 첨단기술 분야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양국의 경쟁이 국가안보라는 구도에서 이해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신흥기술(emerging technology)의 변수가 미래 국력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만큼 기술 경쟁력이라는 변수가 안보문제라는 프레임에 투영되어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미중경쟁을 보면 기술변수가 경제와 산업의경계를 넘어서 안보와 외교의 문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안보는 국가 및 국제안보를 좌지우지하고 ‘지정학적 위기’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부각되는 양상을 보인다.
신흥기술의 변수가 야기하는 안보문제는 해킹 공격이나 인프라 및 공급망 보안, 우주의 군사화, 드론 작전, 킬러로봇의 도입 등과 같은 좁은 의미의 군사 안보에 머물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기술안보의 문제를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의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첨단기술과 관련된 신흥안보의 세계정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 최근의 미중경쟁 과정에서 늘어나고 있다. 신흥기술의 신흥안보 쟁점들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타 다양한 이슈와도 연계되고 있다. 최근미중경쟁의 불꽃이 무역을 넘어 관세, 환율, 자원, 그리고 군사안보와 동맹 외교, 국제규범 등이 관련된 분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중경쟁은 일부 분야에 국한된 이해 갈등이 아니라, 양국의 사활을 건 외교안보의 의제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맹·외교와 규범·가치의 플랫폼 경쟁
최근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에서 주목할 부분은 ‘동맹과 외교의 플랫폼 경쟁’이 부상하는 현상이다. 2020년8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으로부터 중요한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수호하기 위한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을 발표했다.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이동 통신사와 모바일 앱, 클라우드 서버를 넘어서 해저케이블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모든 IT 제품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민의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사실상 전 세계 인터넷 비즈니스와 글로벌 통신업계에서 중국 기업들을 몰아내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로 맞대응했다. 2020년 9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다자주의, 안전과 발전, 공정과 정의를 3대 원칙으로 강조했다. 데이터 안보에 대한 위협에 맞서 각국이 참여하고 이익을 존중하는 글로벌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데이터 안보와 관련해서 다자주의를 견지하면서 각국의 이익을 존중하는 글로벌 데이터 보안 규칙이 각국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부 국가가 일방주의와 안전을 핑계로 선두 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노골적인 횡포로 반대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또 다른 거대 플랫폼 블록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도 그러한 경향을 담았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러한 가치 지향이 더 커지고 있다. 기술보다 가치를 강조하고 안보보다 규범을 강조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동맹 전선을 고도화하여 국제적 역할과 리더의지위를 회복하고 다자주의를 강조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국가 기반시설 수호를 위해 다른 국가와 협력을 표명하며, ‘하이테크 권위주의’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사이버 민주주의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여 중국도 보편성과 신뢰성, 인권 규범의 문턱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보편 규범과 가치의 플랫폼 경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