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의 시작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졌다. 회의, 교육, 의료, 건강관리, 공연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메타버스의 활용방안이 모색되고,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 그리고 여러 시도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메타버스 광풍’ 이면에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거세다. 특히나 많은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개발한 가상도시들은 잠깐의 관심 이후 지속적 활용이 이뤄지지 않아 방치되거나 폐쇄되는 경우도 더러 발생하고 있다.
이에 현재는 메타버스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보다 올바른 활용과 건설적인 향후 방향성에 대한 진단·제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현실 공간을 가상세계에 3D로 구현하는 분야 또는 아바타 꾸미기 등 극히 일부분의 요소만 강조돼 관심과 개발이 편중되면서, 콘텐츠의 지속적인 활용에 있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한 수많은 정의와 해석이 난립하며 오해가 커짐에 따라, 메타버스에 대한 정확한 정의 및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명확한 제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1992년 스노 크래시부터 현재, 2023년의 메타버스까지
메타버스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였다. 이후 여러 공상과학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등장했던, 매우 기술적으로 보이거나, 혹은 완전한 공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철학적이기도 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는 각기 불리는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결국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상세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즉 스노 크래시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는 우리가 다양하게 상상해오고 그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현실 같은 가상세계’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메타버스로 통용되기 시작한 ‘현실 같은 가상세계’는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사용자가 현실로 착각할 정도의 실재감을 가지고 있는 ‘가상세계’, 현실과 같은 현존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가상의 자아인 ‘아바타’, 사용자의 실제적인 ‘상호작용’ 등으로 구현된다.
먼저 Augmented Reality(AR)는 증강현실로, 현실에 가상의 물체를 증강시키는 형태의 가상현실을 의미한다. TV 스포츠 중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축구 경기에서 프리킥 위치와 골대 사이의 거리를 표시하여 보여주는 그래픽 이미지나, 수영이나 육상 경기에서 선수별 트랙에 국기와 선수의 이름을 보여주는 것도 모두 증강현실에 포함된다.
한편 AR은 ASF의 메타버스 분류상 대각선 반대쪽에 있는 가상세계(Virtual Worlds)와 비교했을 때, 보이는 형태가 외부적(external)이고 현실과 결합 혹은 증강되는(augmentation) 형태를 의미한다. ‘포켓몬 GO’(2017)를 예로 들어보자. 흔히 일반적인 디지털 게임을 개인적 공간에서 즐기는 것과 달리 포켓몬 GO는 야외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실제 환경을 비추고, 여기에 증강된 가상의 포켓몬을 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AR과 정반대로, Virtual Worlds(가상세계)는 우리가 흔히 가상현실(VR)이라 부르는 것이다. 메타버스 분류에서 VR은 AR과 더불어 메타버스가 ‘보이는 형태’를 구분 짓는다. 가상세계의 경우 가장 일반적으로는 모니터의 형태로 보일 수도 있고,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인 HMD의 형태로 보일 수도 있다. 모니터나 HMD의 형태로 보인다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환경(intimate)에서 가상세계로 접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현실에 증강되는 AR과는 달리 100퍼센트 컴퓨터에 의해 가상으로 구현되는 것(simulation)을 뜻한다.
한편 1945년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 1890~1974)를 통해 처음 언급된 Lifelogging(라이프로깅)의 사전적 의미는 life와 일기를 뜻하는 log의 조합으로, 개인의 인생을 기록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전의 라이프로깅은 사진을 찍어서 간단한 설명 글과 함께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SNS의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발달 이후 자동 저장되는 데이터의 종류가 사진을 넘어 위치정보, 운동정보, 심박수 등의 생체정보 등으로 확장됐다. 이처럼 변화한 라이프로깅은 향후 메타버스의 발전과 함께 더욱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Mirror Worlds(거울세계)는 우리의 현실세계를 ‘거울에 비춘 것처럼’ 가상세계에 그대로 옮긴 것을 의미한다. 현실의 공간이나 사람을 가상세계에 쌍둥이처럼 구현했다는 의미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ASF의 메타버스 분류에서 거울세계와 라이프로깅을 반대로 배치한 것을 보면, 2006년 당시에는 현실을 그대로 가상으로 옮긴 ‘거울세계’와 SNS처럼 현실에서 디지털 기술을 통해 소통하는 ‘라이프로깅’을 각기 다른 형태로 분리한 것으로 보인다. 즉 완전한 가상세계에서의 상호작용과, 현실에서의 SNS를 통한 상호작용(소통)을 구분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개개인의 기록에 의지하던 SNS 기반 초기의 라이프로깅과 달리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대중화와 센서의 발전으로 인해 현재 라이프로깅은 개인의 자발적인 기록을 넘어섰다. 위치, 사진, 걸음 수, 심박수, 취향(접속 빈도수) 등 자동으로 기록되는 다양하고 엄청난 양의 정보로 일기나 SNS 같은 단순 기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개인 맞춤형 서비스 또는 콘텐츠를 의미하게 됐다.
2006년과 달리 현재의 메타버스에서 라이프로깅은 거울세계를 더욱더 풍족하게 만드는 기초 자료로써 활용되고 있으므로, 따로 분리하기보다는 동일하게 중요한 메타버스의 구성 요소로 보는 것이 맞다. 즉 라이프로깅으로 얻은 위치정보들을 통해, 내가 현실에서 생활하는 공간들이 ‘거울세계’ 안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되고, 내 건강정보 등의 데이터가 거울세계 안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에 반영될 수 있는 것이다(개인의 신체 데이터가 반영되어, 아바타의 외형이 바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