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원격의료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건강보험상의 수가정책에 따라 참여도가 결정될 것이다. 만약 건강보험에서 원격의료를 대면 진료와 동등한 또는 적어도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의 수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의료인들에 의하여 원격진료가 외면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원격의료가 발달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미국에서도 목격되는데, 과거에는 미국 보험회사들이 원격의료에 대한 수가를 대면진료 수가보다 훨씬 낮게 책정했기 때문에 미국 의료인들이 원격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COVID-19 기간 동안 보험회사들이 원격진료 수가를 대면진료 수가에 상응할 정도로 상향하였고, 이에 따라 의료인들이 원격의료를 활용하는 비율도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진료는 비대면으로 하면서 의사의 처방에 따른 의약품을 구매하기 위하여 반드시 약국을 방문해야 한다면 원격의료의 취지가 반감될 것이다. 물론 의료기관보다 약국의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진료는 원격으로 받더라도 처방전에 따른 의약품 구매는 약국에서 대면으로 해야 한다.
논리도 성립이 가능하지만, 원격의료는 반드시 의료기관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가 아니라, 환자가 병원 방문이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COVID-19처럼 비대면적인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료뿐만 아니라 의약품 구매도 비대면을 정책적으로 허용할지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원격의료가 허용될 때 최소 시설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원격자문에 관한 현행 의료법 및 시행규칙에서는 ‘서버’를 구비할 것을 강제하고 있는데, 2022년 현재 이미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여 익숙한 Zoom, Webex 등의 플랫폼은 위와 같은 서버 구비 의무로 인하여 원격의료 현장에서는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향후 원격의료의 본격 도입을 준비함에 있어, 시설 기준을 행정 편의에 기초하여 입법하기보다는, 이미 우리 사회에 널리 이용되고 있는 화상회의 플랫폼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격의료 도입 진행 상황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지만, 의료관련 각 주체들의 첨예한 입장 차이로 인해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 속도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는 원격의료 시 비대면으로 확인되는 수치만으로 의사의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합병증 및 부수 질환 등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불명확한 책임소재로 인해 의료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으며, 원격의료를 위한 인프라 마련에 많은 예산이 소요, 대형병원으로 수요 집중 시 중소형 병원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들며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소비자들은 진료대기 시간 단축, 별도의 이동없이 원하는 시간대에 진료를 볼 수 있는 점, 지역별 의료 불균형 해소 등의 장점을 꼽으며, 원격의료 도입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34개국이, 또한 G7 국가 모두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는데 한국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기는 어렵다. 또한 금번 COVID-19와 같은 팬데믹 특수 상황이 향후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겹치며, 우리 정부 또한 원격의료 도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10년, 2014년, 2016년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입법화되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발의된 ‘동네의원의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아직 계류 중이나, 그동안 원격의료에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최근 ‘긍정적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향후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 이슈는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2019년 기준 2.5명으로 OECD 평균인 3.6명보다 낮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건강보험 재정의 43.1%를 65세 이상 인구가 사용 중이다. 고령화를 대비한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해결책으로 국내 원격의료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원격의료 뿐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를 견인하는 동력은 ‘빅데이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데이터를 어떻게 축적하고 활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한데, 보건의료 빅데이터 통합·활용은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원격의료에서 진찰과 검사 기기는 매우 중요하며, 또한 축적된 데이터의 분석 및 활용 능력에 따라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형태가 결정될 수 있다. 우선, 환자가 자유로운 공간에서 의료진에게 진찰받을 수 있도록 연결성이 뛰어난 진찰 기기의 개발이 필요하고, 환자의 일상적 데이터의 획득 뿐 아니라 이를 기존 진료 데이터와 통합하고 분석하는 자동화된 통합· 분석기술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는 기존의 의료진과 환자 간의 의사소통, 의료 서비스의 제공방식 등에 변화를 수반하게 되고, 결국 기존 의료종사자의 역할과 필요성을 변화시킬 것이므로, 신기술 적용 단계에서부터 신중한 고려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