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신의 구매와 생산에 관여한 정부 정책은 학계 및 산업계의 관심을 요한다. 우선, 이 정책의 성공에는 '백신 태스크 포스'가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태스크 포스의 수장은 케이트 빙햄이라는 인사였는데, 보리스 존슨 총리가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수장을 맡아 달라 부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빙햄은 정부와 협업했던 경험이 거의 없는 바이오테크 벤처 캐피털리스트였는데, 그의 업무는 높은 수익률을 가져줄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내는 것이었다.
빙햄은 백신 구매에서도 벤처 캐피털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우선 그는 과학자, 군인,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산업자본가로 이뤄진 팀을 만든 뒤, 다양한 워 게임을 벌여 존슨 총리가 지시한 일을 최대한 수행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했다. 한 스페인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빙햄의 태스크 포스가 총리로부터 받은 유일한 지시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멈춰 달라'고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사실 벤처 캐피털 펀드의 업무는 단순하다. 동시에 매우 대담하다. 그들은 다양한 기업에 자본을 쏟아낼 뿐이다. 이른바 분산투자의 다른 형태다. 당연히, 그들 중 일부는 실패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크게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실패를 다 채우고도 남을 만한 이익을 보상한다. 이를 바탕으로 벤처 캐피털은 더 큰 투자에 나선다.
백신 태스크포스도 이러한 방법을 모방했다. 아스트라제네카든 화이자든 모더나든 노바백스든, 그들은 일단 국적과 상관없이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백신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실패하겠지만, 어느 하나만 성공하더라도 백신 접종 캠페인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벤처 캐피털은 매우 자본주의적인 기술 투자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벤처 캐피털은 국가가 나서서 특정 기술을 개발하라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혁신 생태계에서 만들어진 기술 중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찾아 적극적으로 베팅을 건다. 어떤 것은 실패하고, 큰 손실을 입고 업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가 크게 성공하면 그간의 실패를 채우고도 남는다. 그것이 혁신 생태계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팽창한다.
흔히들 말하는 소수 중심의 엘리트주의라는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감을 주는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정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집행할 때 정부의 인력 풀 외부에 있는 소수의 엘리트 태스크포스를 운용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사실상 0에 가까웠던 생산 캐퍼시티를 단 수년 만에 확장하는 작업은 영국 정부와 산업계의 적극적인 결연 덕분에 가능했다. 이것은 오히려 전통적인 정책 성공에 가깝다. 정치적 의지가 산업계의 요구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생산능력을 빠르게 팽창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 정부는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관료주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필요한 캐퍼시티를 증대할 수 있다.
산업계와 정부의 결연은 유착을 만들어 규제 포획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것은 당면한 위기상황에 적절한 우려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