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근대(近代)”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랴. 필자가 구소련 붕괴, 이념과 체제 혼란 등을 보면서 우리가 ‘전근대에 대비한 근대, 근대성’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에서 근대국민국가에 필요한 국민형성을 제대로 못했다는 반성이다. 학교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배우면서 근대에 대한 비난부터 배운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혁명(?), 프랑스 학생운동, 공산주의 등에서 드러났듯이, 근대를 낳은 기독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획’이 자리한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조선시대 우리 조상과 혈연, 지연, 정신문화적으로 굳세게 묶여 있다. 화폐의 인물부터 도로명, 동상銅像, 사극史劇 등은 국민을 조선시대로 후퇴시킨다. 최근 자유 빠진 민주주의, 이승만 박정희 업적에 대한 독재 폄하, 부정선거 논란 등을 겪으면서 동료 선후배들도 근대와 전근대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쿠야마는 근대의 정점으로 자유민주와 자유시장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역사의 종언’이라고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덤불을 걷어내고 다시 근대성modernity의 특징을 정리해 보자. 근대는 ‘개인, 자유, 이성과 과학, 계약과 법치, 자유시장과 교역, 지구촌, 기독교, 국민국가’ 등이 교직交織으로 얽혀있다.
①개인
인류는 오랫동안 씨족, 부족, 국가 등 전체 공동체의 일부로만 살아왔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신의 백성, 왕의 신민, 국가의 국민을 거쳐 자유로운 도시와 시장의 개인이 등장했다. 개인은 누구나 법 앞에, 신 앞에 평등한 단독자로서 독립적이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을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이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사적 소유권 절대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자기 책임의 원칙 등으로 구성된다. 속지 말자. ‘사람이 먼저다.’라고 선전선동하는 자들은 개인을 다시 공산당 특권계급 아래 두고자 달콤한 말로 포장하였다.
②자유
자유는 개인 기업 국가 등 주체가 가장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권리다. 근대국민국가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자유의 보장과 확대를 최우선 임무로 한다. 자유는 왕과 압제자들로부터 풀려남이고, 경제할 자유이며 자기 노동으로 확보한 사유재산의 안전한 보호, 법 앞의 평등이 그 시작이다. 다만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자유의 일부를 법률로써 제한한다. 입만 열면 자유 뺀 ‘민주’를 읊조리는 자들은 자유를 ‘제멋대로’ 나쁜 방종으로 폄훼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유를 빼앗아 간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며, 재산권 없는 노예는 자유도 없다. 개인은 자유를 통해 자율성autonomy을 갖춘다.
③이성과 과학
과학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성, 합리성에 대한 신뢰는 더욱 커졌다. 수학 과학 기술공학 의학 등에서 실증된 신뢰로운 지식(JBK: Justified Believed Knowledge)의 발전을 기초로 인류는 근대문명의 무한한 발전가능성progress에 대해 낙관하였다. 세계대전으로 무참히 부서졌지만, 근대교육의 중심은 과학기술의 상식화였다. 이성과 과학은 법치와 시장질서를 합리적으로 설계(rationality)한다. 사실과 진실을 무시하고 자기 의견 해석 판단 주장을 앞세우는 자들, AI 데이터센터는 짓고 원전은 안 짓겠다는 자들은 지적 결핍과 도덕적 타락으로 과학과 이성을 종종 왜곡한다.
④계약과 법치
불완전한 이성, 이기심, 격정, 복수심, 악의, 성악설을 감안하면 인간 사이의 신뢰는 기껏 대가족, 중소규모 기업을 벗어나기 어렵다. 근대인은 법치와 계약을 통해 신뢰를 무한히 확장해가는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었다. 혈연적・지역적・제도적 신뢰를 넘어 오늘날은 플랫폼을 매개로 분산적 신뢰가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1912년 민사령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원님재판은 그치고, 경성방직 같은 주식회사는 만들어졌다. 인치人治가 아니라 정의의 법치는 근대질서의 근간이다. 3권분립을 무너뜨리고, 범죄 용의자들이 검찰의 손발을 묶으면 나라는 공안통치의 독재국가로 쇠락한다.
⑤자유시장과 교역
사농공상의 신분질서, 농업을 근본으로 하고 상업을 최대한 억제한 것이 전근대국가 조선이었다. 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은 도시화와 산업화industrialization를 촉발하여 널리 자본을 모으고, 원료조달과 판매시장을 만들며 교역을 확장하여 확대재생산하는 국가발전의 원리를 찾아 제도화했다. 벨트브레(박연)와 하멜을 조선에 표류시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 온 국민이 자기 노동력의 수입과 함께 주식을 통해 돈이 돈을 벌게 하여 부유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capitalism의 확립이다. 최저임금의 강제,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관세 등은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로 위의 진흙탕이다.
⑥지구촌과 세계
지중해, 동아시아 중화질서에 묶여 있던 우리는 지리상의 발견 덕분으로 지구촌, 만국공법질서에 눈떴다. 자유시장과 교역은 지구촌화를 촉진시켰다. 각국과 조약과 자유무역으로 국부가 늘어나 최빈국에서 부국으로, 원조를 받다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22 개정의 중학교 ‘한국사’의 최종성취목표를 ‘한반도 문제와 동아시아 갈등 해결’로 묶은 자들은, 만국공법질서로 나간 나라와 국민을 다시 중화질서로 회귀시켜 미래세대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려 한다.
⑦기독교
근대문명, 근대국민국가의 종교적 기반은 개혁한 기독교이다. 개신교의 사회 참여는 세속화secularization를 촉진하여 자본주의의 근검 성실과 함께 발전하였다. 이들은 자유로운 개인을 신 앞에 단독자로 세움으로써 권리와 책임을 개인에게 지웠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 정치제도를 만들었고, 자유로운 개인은 과학기술을 탐구하고, 제조업의 융성과 상업과 교역의 발전을 가져왔다. 우리나라도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3.1운동과 이승만의 건국으로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겠다고, 빼앗기는 자유를 되찾겠다는 외침은 점점 일부 깨인 기독교인들만의 것인가?
⑧국민국가
앞의 근대성을 집대성하여 제도화한 것이 국민국가이다. 교육을 통해 국민형성nation building을, 정치를 통해 국가형성state building을 이룩한 것이 근대국민국가이다. 국민 영토 정부 주권을 가진 독립된 자치 국가 수립이다. 1차대전의 전제왕정 붕괴와 2차대전의 제국 해체와 식민지 해방으로 많은 국가가 탄생하였으나, 근대국민국가로 성장한 나라는 극소수이다.
인간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공동체로서 국가는 공적인 근대적 관료제bureaucracy 수립을 통해 사적인 가족 못지않게 국민의 자유와 삶의 질, 행복을 좌우한다. 국민국가는 자강과 함께 이념과 체제를 같이 하는 국가간 동맹을 통해 그 생존과 번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여기에 20세기 현자 이승만같은 외교력이 가장 중요하다. 영국의 아담 스미스와 존 로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일본의 후쿠자와 유기치, 싱가포르 리콴유, 우리나라 이승만과 박정희가 꿈꾼 나라가 근대국민국가였다. 대한민국은 잘 성장하다 억울하게도 민중(인민)민주를 앞세운 사회(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에 속아 성숙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추락하고 있다.
다시 현대적 근대성을 되살리자
신분제 아래 왕의 신민과 달리 근대인은 교육을 통해 위와 같은 근대성의 특성을 장착하여,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 이성적 비판적 합리성, 시민적 윤리와 책임, 교육과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는 주체이다. 이러한 근대성을 깨우친 국민이 늘어날수록 나라는 다시 일어나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