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바이오”… 새로운 미래

AI와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 선 바이오 우리나라 첨단바이오 국가 전략의 진화 AI 실력 발휘를 위한 데이터 생태계 조성 시급

2025-09-03     김맹근 기자
사진 : pixabay

[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21세기 인류는 저성장, 팬데믹, 기후변동 등의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기존 산업 체계로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성장 동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 희망은 바로 ‘바이오경제(Bioeconomy)’다.

OECD의 정의에 의하면 바이오경제는 생물자원의 생산과 이를 제품(식품, 재료, 의약품, 에너지 등)으로 전환하는 과정 전체를 혁신적 기술을 통해 실현하는 경제를 말한다. 이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화석 기반 산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2025년 글로벌 바이오 시장 규모는 이미 반도체 산업의 세 배 이상으로 성장하여 2조 4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I와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 선 바이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전환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 속에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로봇 기술,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이 모든 산업과 일상에 침투하면서 산업구조 자체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체감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생명공학이며, 이는 바이오경제를 끌고 나가는 핵심 엔진의 역할을 한다.

유전체 분석, 단백질 구조 예측, 신약 설계, 디지털 치료기기, 생체 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의료 등은 모두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생물학은 데이터의 규모가 크고 복잡하며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AI의 적용에 매우 적합하다. 3차원 구조 기반 약물 타깃 예측, 단백질-리간드 상호작용 분석, 유전자 편집 정확도 향상 등 AI가 도입될 수 있는 영역은 사실상 무한하다. 이미 2024년도 노벨상 수상 사례를 통해 우리 모두는 AI가 생명공학 분야의 발전에 얼마나 크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목격하지 않았는가.

최근에는 ‘Evo2’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완전 개방형 유전체 파운데이션 모델이 BioNeMo에 탑재되어, 병원성 돌연변이 예측, 유전자 필수성 분석 등에서 기존 모델을 능가하는 성능을 입증했다. 이는 AI가 생물학적 서열의 기능과 특성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설계의 범주까지 넘보게 만든 혁신인 만큼 그 결과의 안전한 활용에 대한 윤리적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첨단바이오 국가 전략의 진화

우리 정부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23년 6월 정부는 ‘디지털 바이오 혁신전략’에서 AI 기반 신약개발, 디지털 치료기기, 합성생물학, 휴먼 디지털트윈, 오가노이드 등 첨단기술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2030년까지 바이오산업을 100조 원 규모로 성장시키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담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 R&D,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글로벌 진출 지원까지 포괄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바이오 경제 2.0 추진 방향’에서는 ‘바이오 경제 얼라이언스’ 출범과 함께 바이오 산업을 제2의 FOCUS Cover Story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 프레임이 제시됐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정밀한 정책 실행 로드맵과 제도 기반 마련, 민관 협업 모델 설계 등을 포함하는 종합전략 이었다.

2024년 4월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수립된 ‘첨단 바이오 이니셔티브’가 발표되었다. 여기에서 정의한 첨단 바이오란 AI·나노·로봇 등 융합을 통해 기존 바이오의 한계를 극복하는 신기술·신산업으로, 디지털-바이오의 융합 및 제조혁신을 통해 2035년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비전을 제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첨단바이오가 AI와 함께 기술주권 확보에 필수적인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어 미래혁신 기술의 양대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2025년 1월에는 세계 바이오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정책적 구심점 역할을 할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범부처 민관협력 체계로서 바이오 대전환을 위한 기반(Infrastructure), 연구개발 혁신(Innovation), 및 산업(Industry) 측면의 핵심 과제를 도출했다.

AI 실력 발휘를 위한 데이터 생태계 조성이 시급

AI는 첨단바이오의 핵심 분야 중 하나인 신약 개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유의해야 할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Nature는 신약 개발에서 AI가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네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데이터의 질과 표준화 부족이다. 서로 다른 실험 환경과 기술, 명명법 차이 등으로 인해 AI가 ‘배치 효과(batch effect)’ 를 잘못된 생물학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부정적 결과의 미공개 문제다. 대부분의 논문과 특허는 성공 사례만 공유되며, AI는 실패 데이터를 학습하지 못해 현실 왜곡이 발생한다.

셋째는 기업 간 데이터 공유의 한계다. 제약사와 연구 기관은 보유한 대규모 데이터를 좀처럼 외부에 공유하지 않으며, 이는 AI 모델 성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고품질 데이터셋의 부족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아도 품질이 낮으면 AI의 판단력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디지털화·AI에 기반한 첨단바이오의 발전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와 ‘문화’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KOBIC과 KISTI의 역할 기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바이오 대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데이터의 수집 및 제공(공급 측면)과 이를 다룰 수 있는 전산 인프라(활용 측면) 마련이 필요하다. 이미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와 KISTI 국가슈퍼컴퓨팅 본부 디지털바이오컴퓨팅연구단은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과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을 통해서 대량의 바이오 정보 생산·수집·공유 및 활용 기반 조성에 이르는 국가적 사업의 협력을 진행해 오고 있다.

우리는 이미 바이오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이 거대한 기회를 실현하는 데에는 세밀하게 짜인 국가 전략의 강력한 추진,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의 정비, 그리고 각 실행자들의 유기적 협업이 필요하다. 첨단바이오가 그리는 미래는 단순한 산업의 변화를 넘어, 인류의 생존, 건강, 번영의 방식 자체를 다시 그리는 청사진이 될 것이다. 지금 이야말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