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으로 만든 진통제… AI 아닌 박테리아가 해냈다
PET병 분해해 48시간 만에 파라세타몰 생성… 전환율 92% 기록
[디지털비즈온 송민경 기자] 플라스틱 쓰레기를 진통제로 바꾸는 연구가 현실이 되고 있다. 유전공학으로 조작된 대장균(E. coli)이 폐플라스틱 병을 분해해 ‘타이레놀(Tylenol)’이나 ‘파나돌(Panadol)’에 사용되는 진통제 원료 성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가디언, IFL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 연구는 지난 6월 23일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게재되었으며,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기존에 화석연료에 의존해 생산되던 의약품의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플라스틱 업사이클링의 매우 흥미로운 출발점이라고 본다”고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의 생명공학자 스티븐 월리스(Stephen Wallace) 교수는 언급했다.
월리스 교수 연구팀은 먼저 대장균이 진통제 전구체 물질인 PABA(para-aminobenzoic acid) 를 만들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특히 로센 재배열(Lossen rearrangement)이라는 특수 화학 반응을 세포 내에서 유도해 플라스틱 분해물로부터 PABA를 생산할 수 있을지를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대장균의 기존 PABA 생성 경로를 차단하여,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환 반응 없이는 생존하지 못하도록 조작했다. 실험 결과, PABA로 전환 가능한 전구체 물질이 투입되자 대장균이 생존했으며, 이는 곧 해당 반응이 세포 내에서 실제로 발생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후, 동일한 PABA 전구체를 플라스틱 병의 주요 성분인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얻는 데도 성공했다. 해당 플라스틱 기반 물질 역시 대장균을 살렸고, 이는 PET에서도 생물학적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전 연구에서도 플라스틱을 미생물 연료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그 다음 단계까지 도전했다. 연구팀은 추가 유전자를 삽입해 대장균이 PABA를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 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조작된 대장균은 48시간 이내에 분해된 플라스틱의 92%를 파라세타몰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파라세타몰은 화석연료 기반 합성법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이 방식이 상용화된다면 의약품 생산의 탄소발자국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