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주요국 동향
국내 의료공급 92%(외래환자 기준)은 민간 의료기관을 통하며, 원격진료가 시행될 경우 최상급 의료기관 중심 이용자 편중
[디지털비즈온 김맹근 기자] 원격의료(Telemedicine, Telehealth)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한 분야로, 환자가 병·의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정보 통신기술(ICT)을 이용하여 적절한 진료·처방·모니터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원격진료란 병원 진료실에 서 환자를 진료하던 것을 전화·문자·이메일·화상기술 등을 통해 원격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원격의료 중 일부분에 해당한다.
즉, 원격의료는 더 넓은 범위의 용어로 원격 환자 모니터링·원격수술을 포함하는데, 예를 들면 당뇨병·고혈압 등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이고, 당장 아프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대체하는 것이 원격 진료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상의 원격의료는 ‘의료법상 의료인이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원격지의 의료인에 대하여 의료지식 혹은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즉 국내의 원격의료는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료 행위에 국한되어 있으며, 원격지의 의사는 ‘지원’만 할 뿐 진료행위는 할 수 없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 해당되는 의료행위 라고 볼 수 있다.
원격의료 규제 동향
초창기 원격의료의 개념은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가 어려운 지역 거주민을 대상으로 제안된 것으로, 미국·호주 와 같이 의료기관과 거주민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큰 국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COVID-19 이후 전 세계는 빠르게 비대면 사회로 전환되었고, ‘물리적 거리’에 초점을 두었던 원격이라는 의미가 ‘비대면’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한국은 의료인-환자 간의 원격진료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COVID-19 기간에 예외적으로 전화 진료 등을 허용한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주요 국가들의 원격의료 관련 규제 동향을 살펴보고, 한국의 상황을 보다 면밀히 분석해 보겠다.
미국은 넓은 국토 면적에 따른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1990년부터 원격의료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원격진료가 합법화되었으며, 1993년 미국원격의료협회(American Telemedicine Association)가 설립되면서 원격의료가 시행되었고, 1997년 이후 원격의료에 보험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인데, 향후 의료비 절감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원격의료가 더욱 각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공약 중의 하나는 메디케어와 같이 연방정부에서 관리하는 새로운 ‘공공 옵션(public option)’인 건강보험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료비 부담 감소와 의료 혜택 확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 미국의 원격의료 서비스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를 위한 연방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정부는 2019년 발표한 ‘NHS(영국국립보건서비스) 장기 계획(The NHS Long Term Plan)’을 통해 원격의료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인 NHS App을 통해 2019년 7월부터 영국의 모든 1차병원이 NHS App과 연결되도록 하여, 모든 국민이 이 앱을 통해 진료기록을 열람하고 장기 복용하는 약은 자동으로 처방전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일부 병원의 경우 NHS App을 통해 원격진료도 할 수 있다.
NHS 계획에는, 모든 환자가 2020년 4월까지는 온라인 진료를, 2021년 4월까지는 영상이나 음성을 이용한 실시간 영상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금번 COVID-19로 인해 정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원격의료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역시, 2018년부터 원격의료를 합법화하고 의료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원격진료에 사회보험이 적용됐지만, 1년 이내 진료이력이 있는 의사의 원격의료만 해당되는데다 기술적 문제, 비용 등 의사의 부담도 커서 이용률은 답보 상태였다. 하지만 COVID-19가 확산되자 규제를 완화하고, COVID-19 치료 및 간호 관련 원격진료비에 사회보험 100%를 부담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의료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원격의료를 금지하여 디지털화에 뒤처져 있었으나, COVID-19로 인해 병원 디지털화의 시급성을 인지했다. 2020년 10월 ‘병원미래법(the Hospital Future Act, KHZG)’을 발표하고 원격진료 및 전자 문서 발행, 디지털 약물 관리, IT 보안 강화, 로봇 의료 장비 도입 등을 허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 제도 마련은 늦었지만, 가장 빠르게 원격의료가 확산 중이다. 중국 정부는 의료 인프라 부족, 병원-환자 간의 물리적 거리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효율을 해결할 방안이 필요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원격의료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4년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여 원격자문·원격 모니터링·전자처방전 발급 등 원격의료 관련 서비스 제공을 독려하였으며, 2018년도부터는 온라인 진료와 온라인 병원을 허용하여, 최초의 온라인 병원인 ‘광동성 온라인 병원’이 개설되었다. 2020년 10월 기준 전국에 온라인 병원 900여 개가 운영 중이며, 최초의 온라인 병원인 광동성 온라인 병원의 일평균 진료환자는 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의사-의사인 간 ‘원격협진’만을 허용하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금지되어 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의학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십 년째 원격의료를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의 또 다른 반대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인구 천 명당 가장 높은 병상 수를 보유한 국가 중 하나로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상황이다.
국내 의료공급의 92%(외래환자 기준)는 민간 의료기관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원격진료가 시행될 경우 최상급 의료기관 중심의 이용자 편중이 심화되어 중소 의료기관 및 동네의원이 생존이 어려워질 것에 대해서 의료계의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